[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란 환상 깨야
지난 1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4에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이 참가해 화제가 됐다. 그만큼 스타트업의 열기가 엄청나다는 얘기다. 중요한 자원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많지 않은 한국이지만 인적 자원이 풍부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타트업 세상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주에 거주하는 한국계 인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 전역 곳곳에서 스타트업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 이들을 돕는 유명한 멘토가 한기용(UpZen 대표ㆍ55)씨다. 그가 최근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내놨다. 스타트업을 2개나 성공시킨 그의 스토리는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막 시니어가 돼 은퇴는 이르지만 2모작에 나선 그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며 주류 사회에서 스타트업 멘토로 활약하고 있는 커리어 코칭 기업인 업젠의 한기용 대표가 지난 2월 '실패는 나침반이다'(부제 50대 개발자의 실리콘밸리 회고록)라는 책을 한국에서 출간했다. 지난 30년 간 스타트업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했다. 멘토가 많지 않은 한국 스타트업 분야에서 많이 읽히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까지 겸비한 잘 알려진 멘토다. 그에게 멘토링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굳이 IT업계가 아니어도 매우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SNS인 링크드인(linkedin.com/in/keeyonghan/)에서 '멘토링 이야기'라는 100회짜리 연재 글을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 멘토로 멘티그룹을 지도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전공을 살려 데이터 엔지니어링 라이브 강의도 했다.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90년대 초반 한국의 IT업계는 물론 이후 미국의 IT업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해가 된다. 또한 그의 데이타베이스 하둡에 관한 책은 대학 전공 교과서가 될 정도였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한기용 대표가 서울대에 입학한 해는 1989년이다. 당시에는 의예과, 물리학과, 컴퓨터공학과 등 세 학과가 이과계열에서 톱을 다투던 시절이다. 의대에 가라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며 재수 끝에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관심도 없는 의대를 가지 않은 것이 개인적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사실 학교보다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다른 분야도 모두 그렇습니다." 오히려 2학년에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실에 드나들면서 업계에서 실무 경험을 갖고 학위를 위해서 돌아온 선배들과 컴퓨터 바이오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다. 선배들의 박사 논문 주제인 인공신경망을 익혔고 영문 윈도에서 구동되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에도 참여했다. 결국 이것이 인연이 돼 서울대 석사 과정에 진학했고 거기서 윈도 프로그래밍을 개발하다가 삼성전자까지 취직해 5년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병역도 특례로 마쳤다. 지금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대기업을 다닌다면 1등 신랑감이라서 주위의 부러움을 살만한 데도 그는 꼭 좋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간다면 7년을 낭비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을 지도 모른다"면서 "미국에 빨리 왔거나 중소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멘티들과 나누는 조언은 이런 경험에서 나온다. '대기업이 네 커리어를 완성시켜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라.' 그의 조언은 계속된다. '네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뭐냐'라고 묻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안전한 선택을 강요 받는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이는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잘못이라고 규정했다. 필요하지도 않은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차세대에게 시키는데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이 무조건 모든 것을 공부로 해결하려는 습관이 든다는 것이다. 무언가 막히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멘토링을 하면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을 공부하면 미래가 준비가 되냐고 물어옵니다. 그런데 세상이 항상 공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수능이나 학력고사처럼 주제와 과정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시험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죠. 또한 성공한다고 해서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시험 공부하듯이 몇 년간 취업 준비해서 네이버나 삼성전자에 갈 수 있고 그러면 자신의 커리어가 완성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는 "기성세대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한 단계 더 나가면 결국 의사가 되면 된다고 결론 짓기 쉽다"며 "간혹 40대 중반인 똑똑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 멘토링 신청을 받는다. 자신들이 해보니까 재미가 없고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어서 크게 방황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현장 교육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한 대표도 31세에 미국에 왔는데 처음에는 이런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은 다양성이 있고 질문을 장려한다는 것은 수평적인 관계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후 작은 회사 중심으로 '남의 행복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원하는 거 하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일했고 2곳의 스타트업 성공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곳은 폴리보어(Polyvore)로 야후에 M&A로 팔렸고 다른 한 곳은 온라인 강의 사이트인 유데미(udemy)로 나스닥에 상장됐다. 물론 그 전에 참여했던 스타트업 3곳은 망했는데 그래서 안목도 생기고 결국은 확률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5곳의 스타트업에서 일해보니 계속해서 도전하는 게 중요하고,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과 문화가 좋은 회사를 골라야 됩니다." 덕분에 40대 후반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가진 경험을 후배들하고 공유해야겠다고 싶었고 특히 한인계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지역 한인 과학기술창업자 모임인 베이에어리어K그룹에 참여해 이사장까지 맡았다.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그는 이제 다른 의미의 2모작을 통해 또 다른 모멘텀을 보며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기업인 업젠을 창업했고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되는지 고민 중이다. 그의 커리어가 첫 10년은 윈도 프로그래밍, 다음 10년은 검색, 최근 10년은 데이터 일에 몰두했기에 이제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해 볼 생각이다. "사실 저는 꿈이 없던 사람입니다. 50세가 넘어서 생긴 꿈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일단은 누가 됐건 만난다. 그가 얻을 게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한국에서 대학생이 와서 만나자고 해도 응한다. 사람이 괜찮고 이야기했을 때 무엇인가 배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계속 만난다. 한 대표는 이미 IT분야에서 많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컴퓨터공학과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이미 비트교육센터에서 강의했는데 소프트웨어 지식을 쉽게 설명해 풀어가는 스킬이 이때부터 시작돼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비주얼 C++'과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집필했다. 당시 방대한 윈도 프로그래밍 방법을 쉽고 간단하게 풀어쓴 덕분에 많은 컴퓨터 공학 관련 학부의 대표적인 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외 저서로 '한번 더 생각한 비주얼 C++와 MFC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한번 더 생각한 윈도우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클릭하세요 닷넷 API 프로그래밍 집필 (대림)', '프로그래머 그들만의 이야기 집필 (영진)', 'Do it! 직접 해보는 하둡 프로그래밍(이지스퍼블리싱)' 등이 있다. 장병희 기자리얼 시니어 스토리 공부 환상 한국 스타트업 스타트업 멘토 윈도 프로그래밍